전설과설화
의호총비와 금효자~
솔향기43
2013. 11. 24. 10:31
의호총(義虎塚) 비(卑)와 금효자
지금으로부터 270여년 전 주천 금산 아래에는 세상일에 초연하여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초야에 |
묻혀 사는 금처사(본명은 금사하)라는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|
그러던 어느날 금처사는 부친상을 당하자 첩첩 산중의 묘소 옆에 묘막을 짓고 |
시묘 살이를 시작했다 |
금처사가 시묘살이를 하던 어느 날, 그의 어머니마저 갑자기 병이 나서 생명이 위급하다는전갈이 왔다 |
효자인 금처사는 약을 지으려고 읍내인 주천으로 건너가는 나루터로 달려갔다 |
상류에서 쏟아진 폭우로 배를 건널 수 없게 되자 금처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|
강 건너를 바라보며 크게 통곡을 하였다. |
이때 짙은 어둠 속에서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. |
눈앞이 캄캄해진 금처사는 죽을 각오를 하고 호랑이에게 "나는 지금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여 |
강 건너 주천에 가서 약을 지어다 드려야 한다. |
내가 어머니께 약을 지어드린 후에 나를 잡아먹던지, 마음대로 하여라 |
라고 크게 호통을 쳤다. |
이에 호랑이는 고개를 숙인 채 꼬
|
호랑이는 금처사를 태우고 거센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 주었다
|
그후, 호랑이는 어머니의 약을 지은 금처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그집앞까지 태워다 주었으며 |
그 약을 먹은 어머니의 병환은 금처사의 지극한 효성으로 완치되었다. |
그후, 금처사는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하자 다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서 |
시묘를 살았는데 밤만 되면 강을 건너 주었던 호랑이가 찾아와서 3년 동안이나 |
효자인 금처사와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묘를 지켜 주었다고 한다.
|
조선 19대 숙종임금(1674~1720)이 승하하여 국상을 당하자 |
충효 사상이 지극한 금처사는 베옷을 입고 주천 망산에 올라가 궁궐을 향하여 |
삼년상을 지냈는데 이때도 밤만 깊어지면 그 호랑이가 나타나서 |
금처사와 함께 밤을 지세웠다고 한다. |
그러나 숙종 임금의 국상을 마친지 얼마 후, 그 호랑이는 늙고 병이든 나머지 |
금처사집 마당에 와서 쓰러지자 그 동안 정이 들었던 호랑이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였으며 |
그 호랑이가 죽자 고이 묻어 주고 매년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|
그후, 나라에서는 금처사에게 신일리 금산 주위에 있는 |
사방 10리의 땅을 사패지로 하사하여 그의 효행과 충성심을 기렸으나 |
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던 어느 관찰사가 |
그 사패지를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그호랑이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 |
한편, 금처사의 후손인 금씨 가문에서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|
꿈속에서 그 호랑이가 나타나 현몽을 하여 도와줌으로써 |
수없이 많은 재난을 피할 수 있어 금효자의 후손들인 금씨 가문은 그후, 더욱 번창할 수 있었다 한다. |
그후, 호랑이가 죽은지 23년 후인 1743년에 강원도 관찰사를 보필하는 |
정 3품의 벼슬인 순영중군이 주천에 왔다가 |
이 호랑이의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비석을 세워 주라는 |
분부를 하였고 그 비석이 바로 의호총비이다. |
그 후, 주천 사람들은 호랑이무덤과 비석이 세워져 있는 이 산을 |
'금산'이라 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한 금처사와 |
호랑이 이야기를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. |
♡머무시는 동안 행복 하세요.♡